끝이 좋지 않았던 첫사랑
2022년 여름, 아내와 나는 유럽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2021년 겨울 식을 올리기로 했던 우리는 결혼 준비 당시 코로나의 위세가 잠시 누그러지던 틈을 타 본래는 괌으로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던 10월 즈음부터 여름의 소강기를 추진력으로 삼았는지 코로나 세가 급격하게 도로 불어나면서 급하게 제주도로 계획을 선회하여야 했었다. 그 과정에서 금전적, 시간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득 얻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어지러워진다.
그리고 2022년, 둘 다 3차 접종까지 마친데다 세계적으로 엔데믹 형국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나 1년 정도 지난 후 아이를 가지겠다는 계획까지 맞물려 '지금 아니면 다음 기회는 언제 올 지 모른다'는 마음에 큰맘 먹고 유럽 여행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매우 옳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몇 년어치 여행 할당량은 채웠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로마, 피렌체, 니스를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묵었던 곳은 12구의 한 아파트였는데, 그 전에 경험했던 다른 에어비앤비 숙소들과는 다르게 한 집에 호스트 할머니와 함께 있었고 주방도 실제로 주인 할머니께서 사용하시는 곳을 같이 공유하는 구조였다. 처음 도착 했을때는 약간 어색했지만, 그 곳에 있었던 4일 동안의 경험은 아마 여태껏 묵었던 그 어느 곳보다도 독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별도로 풀어볼까 싶다) 그리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매직 핸즈를 써보게 되었다.
사실 광고로만 보다가 실제 손에 잡아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 이런 신세계가 있나 싶었다. 결혼하고 신혼집을 채우면서 프라이팬을 보관하는 데 그 놈의 손잡이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차였었는데, 공용 손잡이 하나만 있으면 되고, 그것마저도 떼어서 보관하는데 너무 편했다. 그렇다고 손잡이가 헐하지도 않고 팬 자체도 잘 눌어붙지도 않고 꽤나 만족스러웠다. 결국 한국에 돌아와서 쓰던 프라이팬의 수명이 다 함과 동시에 바로 한 세트를 구매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코팅팬은 결국은 코팅팬일 뿐이었다. 물론 처음 사용하던 팬에 비해 두세배 정도 더 오래 버티긴 했지만, 그럼에도 코팅이 벗겨지는 것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특히 손잡이가 닿는 모서리 부분이 눈에 띌 정도로 벗겨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아이까지 있으니 끊임없이 벗겨지는 코팅은 성가신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구매했던 팬의 절반을 버리고 나니 코팅팬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금전적인 면에서도 손잡이가 아깝다고 계속 매직 핸즈로 바꾸기에는 낭비가 심했고, 건강적인 면으로도 언제 어떻게 얼마나 코팅이 떨어질 지 모르는 채로 쓰기에도 꺼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리도구를 가려가며 써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귀찮았다. 이제는 코팅팬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만 했다.
Second time does the charm?
사실 이미 그 이전에도 아이 이유식 용으로 스테인리스 소스팬을 하나 사용하고 있었는데, 미음이나 죽을 끓일 때에는 괜찮았지만 유아식으로 넘어가면서 무슨 짓을 해도 재료들이 붙을 수 있는 구석을 어떻게든 찾아서 끊임없이 들러붙는데 지쳐서 그냥 세라믹 코팅팬으로 바꿔야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코팅팬이라 역시 도구를 잘못 쓰거나 닦을 때 잘못하면 코팅이 벗겨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런 저런 갈림길에서 우왕좌왕 하던 차에 인터넷에서 강철팬(Carbon Steel Pan)이란 물건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물(Cast Iron) 도구는 아내가 생일선물로 준 스타우브로 이미 경험해 본 바가 있었다. 하지만 주물 냄비와 다르게 주물 팬은 생각보다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무게도 무겁거니와 손잡이도 짧고, 무엇보다 데펴지고 식는 시간이 너무 오래 필요했다. 그렇다고 스테인리스로 가기에는 이미 미친듯이 들러붙는 경험을 잔뜩 한 상태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강철팬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때 한번 시도해보자는 마음이 강해졌다. 시즈닝만 잘 하면 잘 들러붙지도 않는 데다가 주물팬 보다 모양새도 편하다니 안 써볼 이유가 없었다. 하루 온종일 고민한 끝에 "일단은 부딪혀 봐야 뭐든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두 번째 조리도구에 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나의 첫 강철팬은 드부이에 미네랄B 20cm 팬이 되었다. 강철팬을 사겠노라 마음먹고서 어떤게 좋을까 열심히 찾아봤지만 한국에서 납득할 만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게 드부이에 뿐이었다. 해외 포럼에 보면 Matfer가 가성비템으로 유명했고, 드부이에 역시 미네랄B 프로나 Blue Carbon Steel 등 선택지가 꽤나 다양했는데, 죄다 직구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마저도 똑같은 크기의 팬이 80유로인데 배송비가 35유로라 한국에서는 가성비도 꽝이었다. 강철팬이 손에 맞아 계속 쓰겠다면 투자를 해봄직 하지만 아직 나는 강철팬에 있어서는 생초보였기에 팬 하나에 115유로를 바로 투자하기에는 출혈이 너무 컸다. 결국 모 쇼핑몰에서 쿠폰 먹여서 7만원에 하나를 구입했다.
처음 받아봤을 때 "아 이래서 외국 만화 같은데서 프라이팬으로 사람을 잡는 장면이 나올만 하겠다" 싶었다. 흡사 조리도구가 아닌 공구를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팬의 두께도 코팅팬에 비해 어마무시했다. '과연 이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었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 휴스턴, 문제가 좀 있는거 같은데요...?
받아놓고 시간이 나지 않아 며칠동안 방치하다가 드디어 짬이 나 시즈닝 작업을 시작했다. 동봉된 설명서대로 뜨거운 물에 왁스를 벗겨내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아주었다. 그 다음 기름을 얇게 발라준 후 인덕션에 올려서 연기가 나기까지 기다렸다. 연기가 보이기 시작할 때 강도를 반으로 줄이고 5분 타이머를 맞추었다. 그 후 두 번 정도 더 기름을 발라주었다. 하지만 처음 시도한 결과물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엉망이었다. 균일한 코팅 대신 온통 거미줄처럼 흔적이 남았고, 어떤 부분은 약간 끈적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경험이 없어 그게 망한 시즈닝임을 알 턱이 없었던 나는 다음날 그 팬에 고등어를 굽는 짓을 감행했고, 스테인리스보단 덜하지만 얘기와는 다르게 마구 들러붙는 고등어 껍질을 보았다.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팬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끈적한 표면은 기본이요, 눌어붙은 고등어의 잔해는 탄화되어 숯처럼 되었다. 이대로는 스테인리스 팬보다 나을 게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몇 번 쓰면 시즈닝이 더 생겨서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꿔먹었다. 시간이 해결 해주기에는 타버린 고등어의 잔해가 너무 거슬렸다. 그리고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타서 눌어붙은 위로는 시즈닝이 제대로 붙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지대한 귀찮음을 이겨내고 다시 작업하기로 마음 먹은 후 초록색 수세미를 사서 초기화를 시도했다. 망한 시즈닝이었지만 시즈닝은 시즈닝이라 벗겨내는 데 팔이 빠질 뻔 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 얘는 그냥 이렇게 막 다뤄도 문제가 없는게 진짜구나'라는 안도감도 한켠에 자리잡았다. 망하면 시원하게 긁어내고 다시 하면 되지, 뭐.
시즈닝을 다 긁어낸 후 이번에는 가스버너를 이용하기로 했다. 처음 시즈닝을 시도했을 때 여기저기 찾아보았는데, 하나같이 인덕션은 온도가 잘 오르지 않아 웬만하면 가스불에 하라고 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귀찮아서 그냥 인덕션에 했었는데, 한 차례 망쳐보고 나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연기가 많이 낧 수 있어 아이가 잠든 후 주방 뒤 베란다에 자리를 펴고 작업을 시작했다.
먼저 팬이 달궈질 때까지 기다렸다. 확실히 가스버너를 사용하니 금방 푸르스름해 질 정도로 달궈졌다. 그 다음 종이타월에 기름을 먹여 바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팬이 너무 달궈졌는지 기름을 바르던 종이타월에 불이 붙기 직전까지 갔다 왔다. 날리는 불티에 놀라서 급히 걷어낸 후 조금 식힌 후 세 차례 기름을 발랐다. 기름을 바르는 순간 흰 연기와 함께 검푸른 시즈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도한 2회차는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슬쩍 보기에도 1회자 결과에 비해서는 매우 양호했다. 측면과 바닥 일부는 아직 열이 덜 전달되었었는지 고르게 시즈닝이 붙지 않았지만 바닥의 80% 이상은 검푸른색의 매끈한 시즈닝이 잘 입혀졌다. 원인을 알았으니 세 번째에는 영상에서 보던 매끈하고 균일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